관광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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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운(정성공이 정련을 죽인 곳)

만석호 동북 기슭에는 거석이 하나 있는데 위에 “쇠운”이라는 글이 있다. 이는 청나라 강희 37년에 샤먼 해방동지(海防同知) 요응봉이 쓴 거다. 전하기로 당시 정성공이 정련을 유인해 죽인 곳이다.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에 정성공의 족형 정련이 감국노왕(监国鲁王)이랑 복건에 들어와 공이 있다하여 정원후로 책봉되었고 병사를 샤먼 만석암에 주둔시켰다. 정성공은 청나라 순치 7년 8월 추석에 부대 합류의 명의로 정련을 유인해 죽었고 그 수군을 합병해 샤먼에 청나라 대항하고 대만을 복구하는 기지를 만드는 데 장애를 제거했다. 여기는 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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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사&천계효종

천계사는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 월송스님이 기부금을 걷어 건설한 거다. 자고로 절에서는 매일 아침에 종을 108회 치는데 종소리가 은은하여 사람의 마음을 세척하고 “108가지 번뇌의 꿈”을 해결한다. “천계효종”은 샤먼 옛 “소팔경” 중 하나이자 샤먼 신스무경 중 하나다. 천계사 뒤는 거석이 들쭉날쭉하고 동굴과 깊은 계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며 동굴에는 석각이 있는데 청나라 건륭 때 황일기가 쓴 거다. 동굴 양쪽은 관통되었고 바람이 불면 동굴에서 소리가 나고 산이 울리며 계곡이 응답해 노호가 끊이지 않고 마치 호랑이가 우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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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암사

“석소”를 거쳐 앞으로 가면 바로 태평암사다. 절 아래 암벽에는 “극락천”이라는 세 글자가 있는데 이는 “석소”랑 서로 어울려 아름다운 운치를 더하며 태평암사 부처 경지의 극락을 우의한다. 전하기로 태평암사는 당나라 때 지어졌는데 때로는 흥성하고 때로는 쇄퇴했기에 명나라 때 지어졌다는 설이 응당 비교적 정확하다. 현존 건물은 2008년에 개축한 거다. 이 곳의 경치는 옛날 사람들이 벌써 알았는데 절 내외 여러 곳의 돌 조각이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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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석소

샤먼 20 명승 중 하나인 “태평석소”는 네 개의 천연 거석으로 구성했는데 거석 두 개가 겹쳐서 한쪽은 붙어있고 한쪽은 벌어져 있으며 다른 두 거석은 세워져있어 석문을 구성하며 “개구소”의 모양을 자연적으로 구성했다. 석문 오른쪽 거석에는 “석소”라는 두 글자가 세겨져 있는데 굳세고 힘이 있어 서예가 후륭하다. 이 곳은 태평암 지경에 있어 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석문 뒤에는 칠언이구: “석위영빈개구소, 산능작주락천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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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암사

중암은 만석암과 태평암 사이에 있어서 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옛 사람들은 시로 “중암지개양암중, 산경영행일선통, 행도사전환희지, 당전옥홀우릉공”으라고 했다. 앞에 있는 구절은 위치를 쓴 거로 절이 중암사, 산은 중암산이며 아래는 만석암 만석연사로 하암이라고도 한다. 그 위는 태평암사로 상암이라고도 한다. 중암사는 면적이 크지 않고 산을 끼고 지었으며 산세에 따라 들쑥날쑥하게 되어 있다. 절의 주요 건물은 전망대를 형성해 시야가 아주 넓다. “시야를 풀어준다”가 이 곳 경관의 특색이다. 절 안에는 큰 돌 하나가 있고 그 위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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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공 독서처

태평암사 건물 앞엔느 해운동이 하나 있다. 동굴 위에 팔각정이 있는데 “정연평군광 독서처”다. 당시 여기는 나무가 무성해 해볕을 막을 수 있어 아주 수려하고 그윽했다. 정성공이 태평암사에 거주했을 때 자주 해운동에 와서 책을 읽고 시냇물 속의 샘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자세히 들었다. 현재 여기는 이미 문물보호단위가 되었다. 정성공의 후예 정붕이 태평암을 유람할 때 시를 “석소” 부근의 석벽에 남겼는데 “유태평암경선세연평군왕독서처”라고 쓰고 “석불능언구상개, 독서심처유매태. 초계막문당년사, 곤해기경거불회.”라는 시가 있다. 여기의 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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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득로

현재의 우림세계 소재지가 예전에는 자운암이라고 했는데 자고로 아득하고 고요하며 초목이 무성하고 반석이 가로 세로 있는 곳이다. 명나라 때 이 곳은 문창묘가 있었는데 문운이 창성하고 공명과 관록을 기원하는 곳이었다. 자운암사는 향불이 왕성하나 길이 험난해 청나라 가경 13년이 되어서야 정광기가 여기에 길을 터고 돌에 “자운득로”라는 글을 썼다. 이는 길이 있어 편리함을 찬양하면서 동시에 글을 읽는이는 열심히 공부해 공명을 얻어야 한다는 것의 우의한기도 한다. 현재는 옛 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그윽한 숲과 길 옆의 석각만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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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호 진망 장사대

만석연사의 산문을 나와 죽림의 작은 길로 올라가서 바다를 지나고 다리를 만나면 대만 관련 문물 보호 단위인 팽호진망장사기념비에 도착한다. 이는 복건 제도 남리가 청군이 팽호에서 정극상과 싸울 때 진망한 장사들을 위해 세운 거다. 문 안에는 원래 장사정이 하나 있었는데 이미 훼손되었고 1998년에 오른쪽에 다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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