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암사 건물 앞엔느 해운동이 하나 있다. 동굴 위에 팔각정이 있는데 “정연평군광 독서처”다. 당시 여기는 나무가 무성해 해볕을 막을 수 있어 아주 수려하고 그윽했다. 정성공이 태평암사에 거주했을 때 자주 해운동에 와서 책을 읽고 시냇물 속의 샘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자세히 들었다. 현재 여기는 이미 문물보호단위가 되었다. 정성공의 후예 정붕이 태평암을 유람할 때 시를 “석소” 부근의 석벽에 남겼는데 “유태평암경선세연평군왕독서처”라고 쓰고 “석불능언구상개, 독서심처유매태. 초계막문당년사, 곤해기경거불회.”라는 시가 있다. 여기의 초계는 정성공을 말하는데 번체자로 “정(郑)”이 “정(鄭)”이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초계”, “초계대이”로 정성공을 은유한다. 곤해는 대만 해협을 말하는데 “태백이 고래를 타고 신성이 되었다”라는 이야기로 정성공이 성곡적으로 대만을 수복하고 반년 뒤에 병으로 대만에서 서거했음을 비유한다.